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식 경례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트라야누스원주.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20px-Roman_signum.jpg|width=100%]]}}} || || ▲ '[[트라야누스]]원주'. 113년 완성[* 군기 좌측을 보면 팔을 들어올리는 듯한 병사를 볼 수 있다.] || 로마 군단 각 대대 [[군기]]인 '시그눔' || 원래는 옛 [[로마 제국]]에서 사용했던 경례가 기원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로마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경례를 했다는 기록, 그림, 조각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로마에서 오른손은 충성심과 신뢰, 믿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오른팔을 뻗어 맹세했다는 기록이나 오른손 모양의 조각을 단 군기 등은 남아 있지만 오늘날의 나치식 경례처럼 팔과 손가락을 곧게 펴서 경례했다는 묘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Martin M. Winkler, The Roman salute: cinema, history, ideology. 2009][*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도 실제로는 경례할 때 완전 곧게 수평으로 편다기보단 팔을 좀 더 살짝 위로 올려 손바닥이 정면에서 보이게 했다.] 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황제의 조각에서도 황제가 오른팔을 들어 대중의 환호에 화답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팔과 손가락 모두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거나 팔은 곧게 뻗었어도 손바닥이 바닥과 마주하지 않고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묘사 정도이다. 문헌상으로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은데 확인할 수 있는 [[로마 제국]]식 경례법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가볍게 쳤다거나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오른팔을 비스듬히 들었다는 어렴풋한 묘사가 전부로, 이 경례법과 나치식 경례법이 뒤섞여서 곧바로 팔을 뻗으면 나치식 경례이고 주먹 쥔 오른손을 왼쪽 가슴 부근으로 가볍게 갖다댄 뒤 팔을 위로 뻗으며 손가락을 펴는 것이 정통 로마식 경례라는 잘못된 구별법까지 생겨났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vid-Oath_of_the_Horatii-1784.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histoire-empire.org/augsbourg_2.jpg|width=100%]]}}} || || ▲ '호라티우스의 맹세'. [[자크루이 다비드]] 작품 || ▲ [[프랑스군|제2군단]]에게 명령을 내리는 나폴레옹. 클로드 고트로 작품. || 이런 경례법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호라티우스의 맹세'가 그려진 이후로 알려져 있으며 18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신고전주의]] 열풍에 힘입어 고대 로마 문화는 대중문화로 퍼졌고 로마식 경례법도 그 흐름을 타고 널리 알려지게 된다. 또 [[내셔널리즘]]의 대두로 인해 국민들에게 공통적인 정통성과 역사를 주입하여 단결심을 심어주려는 운동이 거세졌는데 이탈리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19, 20세기의 여러 연극과 영화에서 18세기에 창작된 로마식 경례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인식이 굳어지게 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제국]]군 또한 이러한 경례 방식을 사용했는데 사실 '''[[중세]] 이후 [[유럽]] 국가들 태반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로마 제국]]처럼 잘나 보일까?'가 주요 관심사'''였다. 그래서 이른바 '로마식'이라는 별의별 행태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일례로 으레 '제국' 딱지를 붙인 국가들은 하나같이 로마처럼 상징으로 [[검독수리]]를 사용하였다. 사실 [[유럽]]에서 제국이라고 자칭하는 나라들은 로마의 후손이란 명분을 내세우거나 다른 [[정통성]] 있는 [[제국]]을 정복하고 그 황제 자리를 차지해서 제국을 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 흉내를 내는 것은 정통성 확보를 위한 행위이다. 당연히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예외가 아니었고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군은 [[군기]]조차 로마군의 은독수리 군기를 똑같이 모방한 형태로 금독수리 군기를 만들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ennis Court Oath.jpg|width=100%]]}}} || || ▲ [[민주주의]] 역사의 기틀 가운데 하나인 '[[테니스 코트의 맹세]]'(그림). 주변 사람들이 로마식 경례를 하고 있다. || [[올림픽]]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쓴 적도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rexcurry.net/bellamy-salute-pledge-allegiance.jpg|width=100%]]}}} || [[미국]]에서는 원래 국기에 대한 맹세에 하던 벨라미식 경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 손을 편 오른팔을 쭉 뻗어서 하는 경례다.]가 있었지만 1939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맹세]] 시 가슴에 손을 얹는 걸로 대체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국전쟁미군나치식경례.jpg|width=100%]]}}} || 그러나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동료들의 묘 앞에서 벨라미식 경례를 하는 [[미군]]의 모습이 찍힌 것을 보아 2차대전 이후에도 종종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축구리그 [[세리에 A]]에서는 로마식이라고 여기는지 이런 짓을 자주 하는 팬들이나 선수가 많아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SS 라치오]][* 하필이면 리그 이름도 [[슈츠슈타펠|SS]] 라치오다.] 소속이었던 [[파올로 디카니오]]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로마 더비]]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골을 넣고 이 경례로 세리머니를 했다.[* 디카니오는 아예 대놓고 자신은 '''[[무솔리니]]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심지어 라치오는 2019년 [[UEFA 유로파 리그|유로파 리그]]에서 [[셀틱 FC]] 원정 경기에 가서 셀틱 팬들을 상대로도 나치식 경례를 해서 현지 셀틱 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셀틱 서포터들도 가만히 있던건 아니라 처형당한 [[베니토 무솔리니]] 사진의 삽화를 그린 걸개를 내걸어 역으로 라치오 서포터들을 조롱했다.] 참고로 셀틱 팬덤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판 NLPDR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좌파 민족주의 성향이 뚜렷하다. 이 경례 방식을 [[스파치오 비탈레|로마 제국의 부활]]을 내건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가 [[국가 파시스트당]]의 경례방식으로 도입하였고 집권한 후에 [[이탈리아 왕국군]]의 경례방식으로 채택하며 부활시켰다. 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이탈리아]]가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워낙 여러 가지로 한심했던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탈리아군은 당시 거수경례와 단검을 위로 향해 올렸다 내리는 경례를 많이 했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경우는 오히려 적었다. 국왕도 거수경례를 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이 나치식 경례를 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며 심지어 같은 [[추축국]]인 [[독일]]에서 역수입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상기했듯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먼저 쓴 쪽은 [[이탈리아]]였고 [[나치 독일]]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빠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속한 나치당에서 따라한 게 시초이다.[* 나치당 초기 '전사'출신 '헤르만 에서'라는 [[듣보잡]]이 이 경례동작과 '하일 히틀러!' 구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히틀러 평전- (요하임 페스트)] 이후 당연히 나치당 내의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SA]]나 [[슈츠슈타펠]]에서도 모두 이 경례가 쓰이게 되었다. 히틀러 집권 뒤에도 [[독일 국방군]] 안에서는 일반적인 경례가 쓰였고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뒤로 국방군 총사령관 대리를 맡고 있던 [[빌헬름 카이텔]]이 '당과 군대의 단결을 위하여'라는 이유를 내걸어 이것을 제식 경례로 제정하였다. 여기에 당시 참모총장이던 [[하인츠 구데리안]]도 한 몫 했다. 다만 이후에도 촬영된 선전영상을 보면 거수 경례가 왕왕 등장하는 만큼 완전히 나치식 경례를 제식으로 굳히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독일에 도입된 이후에 이 경례 방식은 더욱 유명해져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는 1940년대 들어서부터는 오히려 본고장인 [[이탈리아]]를 제치고 '독일식 경례'로 불렸고 독일에서는 '''[[88]]'''이란 은어[* [[이탈리아]] 국가대표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이 이걸로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해당 문서로.]로 불렸는데 이는 이 경례에 반드시 따라붙는 구호인 '하일 히틀러(Heil Hitler)'의 이니셜인 H가 알파벳의 8번째 글자였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